【 regret 】

‘야, 거지 지나간다.’ 하굣길. 옆에 있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거지라는 단어. 이것이 첫 만남이었다. 아직은 볼을 스치는 바람이 쌀쌀한 봄의 초입. 중학교 입학 후 친해진 반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하교하는 길이었다. 시시콜콜 별 내용 없는 우스개 농담.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이 터져나오며 걷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대뜸 요즘은 잘 쓰지도 ...

출간 계약. E북으로 뵙겠습니다^^

겨우 돌아온 곳이었다. 라윤이 어린 시절 저의 할머니와 둘이 살았던 이곳만이 라윤이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이자 안식처였다. 사채업자에 협박당하고, 포주에 협박당하며 돈을 뜯길 때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이 집이었다. 저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이 집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팔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었던 ...

“형 이제 우리 그만 만나요. 솔직히 저 요즘 형 만나도 재미없어요. 형도 느끼죠?” “윤빈아 왜 그래. 내가 뭐 기분 나쁘게 한 거 있어? 미안해. 내가 먼저 사과할게.” 언제나처럼 형은 무엇이 잘못인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내게 사과부터 먼저 했다. 그래. 저런 모습이 싫은 거야. “아뇨. 아시잖아요. 저 원래 연하만 만나는 거. 그냥 솔직히 형 얼굴은 제...

“여태 아무것도 못 먹었구나.. 그럴 것 같아서 죽 사 왔는데 좀 먹어요.” “그냥.... 가시면 안 돼요?” 처음으로 뱉은 말은 역시나 가달라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혼자 아플 걸 생각하니 집에 가만히 있지 못 하겠더라고요. 우진씨 다 나을 때까진 계속 올 거니까 이해 좀 해주세요.” “왜요.” 왜라는 물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다시는 보지 말자던 ...

그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묻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제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리 엄마가 유혹해도 먹기 싫었던 과일이, 저도 모르게 세뇌당한 듯 자꾸만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에게 과일을 먹겠다며 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이젠 과일이 없대요.” 아까부터 계속 과일 얘기를 하는 그를 이해하...

그날 밤 무작정 그를 찾아간 집 앞에서 예기치 않은 모습을 본 후 충격에 휩싸였다. 집에 돌아와서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청하려 하면 할수록 서럽게 울던 그의 모습이 더욱더 또렷이 눈앞에 그려졌다. 무엇이 그렇게도 서러워 밖에서 소리도 못 내고 울고 있었을까. 눈물로 인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로도 찾아 헤매던 그 장소가 어떤 곳이었는지를 알고 나니...

밤새 잠을 설치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나는 결국 오후가 되어서야 침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자기 전 그를 만나러 가야겠단 결심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를 보러 가겠다 마음 먹었더니 그가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준비해서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아주 큰 종합병원은 아니어서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한 복도에 내 발소...

“우진씨? 정유원?” 나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그들의 반응은 통일되지 않고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그와 정유원이 맞았다. “어, 박정후 오랜만. 잘 지냈냐?” 유원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아는 척을 하자 옆에 있던 그는 나와 유원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어. 그래. 근데 니가 왜 우진씨랑 있어?” “너 우진씨 알아?” 술이 많이 취했는지 ...

못생기고 거기에 나이까지 많은 낯선이와 웃고 떠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열이 오른 나는 커피를 주문하지도 않고 바로 그가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성이 난 상태로 그의 테이블 앞에 서서 그와 반대편의 낯선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자 그의 얼굴에서 몹시 당황한 것이 보였다. “우진씨, 여기서 뭐해요?” “아.....” 당황한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쳐다...

그날 연탄 봉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낮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해사한 웃음이 너무나 이쁜것이 보는 내가 자꾸만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눈에 계속 아른거려 오랜만에 메신저의 친구 리스트에서 그의 프로필을 찾았다. 여름 이후 한번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프로필을 보는 것도 세 달 만이었다. 그의 프로필 ...